김갑년 교수 "언어를 바꾸지 않으면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민주시민교육 인문학 강좌 성료
세종시 민주시민교육 제8강 성황리 개최
김갑년 교수 "언어의 왜곡이 곧 역사 왜곡“
세종시가 후원하고 (사)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가 주관하는 '민주시민교육 인문학 강좌' 시리즈 마지막 강좌가 지난 12월 2일(화) 저녁 7시 보람동에 있는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강연은 예정됐던 10월 28일에서 연기되었음에도 많은 시민이 참석해 더욱 열띤 자리를 만들었다.
이날 강의는 고려대학교 김갑년 교수가 '언어의 왜곡, 역사의 왜곡: 언어로 드러나는 식민주의의 그림자'를 주제로 진행했다. 항일 의병장 이강년 선생의 외손이자 전 독립기념관 이사로 활동했던 김 교수는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로 강연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김 교수는 우리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며, 이 말의 선택이 곧 기억과 책임의 방향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같은 1945년 8월 15일을 '해방', '광복', '독립'이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모두 다르다. '해방'은 외세로부터의 벗어남을,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았다는 주체적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위안부', '정신대', '징용' 같은 식민지 시기의 용어들은 폭력의 실체를 감추는 대표적인 언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위안부'라는 말은 '위로한다'는 뜻 자체가 가해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기에, 정확한 표현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이 가해 구조를 드러내고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임을 설파했다.
강의에서 청중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사례는 '계엄(戒嚴)'에 대한 분석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어의 '계엄'은 '경계하고 엄하게 한다'는 추상적 의미지만, 같은 개념의 법을 이르는 독일어 Kriegsrecht(전쟁법)이나 영어 martial law(전시 군법)는 군이 민간을 통제한다는 제도의 본질을 훨씬 직설적으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제도라도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위험의 정도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불법계엄 시도'의 맥락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 역사왜곡은 언어의 왜곡에서 시작된다
김 교수는 언론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사고를 조직하는 중요한 장치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등록금 정책을 두고 "부유한 독일도 수업료를 받는다"고 보도하는 기사와 "독일은 대부분 등록금을 폐지하는 추세"라고 쓴 기사는 사실관계는 같지만, 독자에게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언어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선택해 어떤 의미망 속에 배치할지를 '조직'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역사왜곡의 작동 방식을 세 단계로 정리했다. ① 왜곡된 용어 선택 → ② 교과서·언론을 통한 반복과 담론화 → ③ 시민 인식 속의 내면화.
"오래된 언어가 오늘의 인식을 만들고, 그 인식이 다시 정치와 사회를 움직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언어를 바꾸지 않으면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강연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시민들은 언어의 힘이 우리 인식 속에서 얼마나 깊숙이 작동하는지 의견을 나누며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학생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역사 언어를 가르칠 것인가", "행정, 법률 등에 남아있는 왜곡된 표현들을 어떻게 읽고 고쳐낼 것인가"와 같은 질문과 토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왜곡된 언어를 그대로 두고 역사 인식만 바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오늘 이후 각자 꼭 바꿔 보고 싶은 단어를 한 개씩 마음에 정해보라. 그 단어 하나가 우리 사회의 기억과 민주주의 감수성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사)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는 앞으로도 세종시민과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성장해 가는 민주시민교육 인문학 강좌를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세종지역 공동체미디어 뉴스피치는 지역공동체의 공익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하여 단체·기관의 활동을 직접 홍보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소정 시민기자가 직접 작성한 소식입니다.







